소크라테스의 변명중 세 가지 분류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고발자에 대한 항변과 2)유죄 결정 후 형량을 결정하기 위해서 피고인 소크라테스의 진술이 전개됨과 3)죽음에 의미로 크게 나눠볼 수 있습니다.
고발자에 대한 항변
우선 고발의 내용은 젊은이들을 망치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령스러운 것들을 믿음으로써 불의를 행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상대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그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젊은이들은 그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면서 사람들이 검증받는 것을 보고 들으며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가 바닥이 드러남을 두려워하였고 또한 젊은이들로부터 자신들의 지혜가 바닥이 드러남으로서 젊음이들의 비웃음에 수치심을 느낌게 되어 젊은이들이 따르는 소크라테스를 당연히 미워하게 되었다. 즉 모욕을 받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 화를 내면서 그가 지극히 부정한 사람이라고 말하였고 젊은이들을 망치고 있다며 고발하게 되는 것이 이 사건의 쟁점이 되었습니다.
유죄 결정 후 형량을 결정하기 위한 피고인 소크라테스의 진술
고발에 대해 설득과 첫 고발에 대한 항변 등을 통해서 변론을 펼쳐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소한 차로 유죄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애걸하기는커녕 자신은 국가적 귀인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하다고 진술하였고 나에게 유죄 표를 던짐으로 신이 여러분에게 준 선물에 대해 뭔가 잘못을 범하지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이 유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항변하는 것이라고, 그 항변의 당위성을 말하였습니다.
그는 결코 동정에 호소하는 방식의 항변 연설을 하지 않았으며, 이는 명예로운 일도 아니거니와 정의와 경건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못 박는다.
죽음의 의미
죽음의 의미에 관해 “선한 사람들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나 악한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확신을 이야기합니다.
“본문중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 ”아니,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 " 살러가는 사람과 죽으러 가는 사람의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인가에 대해 신만이 안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견해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고 죽은 사람은 그 무엇에 대해서든 어떤 감각도 갖고 있지 않거나, 아니면 영혼이 이곳에서 딴 곳으로 옮겨 사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 감각도 없는 잠과 같은 것이라면, 꿈조차 전혀 꾸지 않을 때와 같다면, 죽음은 놀랄 만한 이득일 거라고 생각도 한다. 라고 말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정치는 반드시 희생양을 찾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세기 끝으로 가면서 패전과 정변으로 복수와 살육이 반복되고 시민들의 삶과 정신이 극도로 피폐해지자 실패와 불행의 책임을 짊어질 희생양이 필요한 지경에 몰리게 되었고, 결국 소크라테스를 죽이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그의 제자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관한 내용입니다.
서평
이 책은 그의 저자 플라톤의 대화편의 하나이며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후 바로 몇 년에 걸쳐서 쓰여 시간상 오래 지나지 않았고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모두들 잘 알고 있었기에 허구는 거의 배제되었다고 보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청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고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또한 신도 인정하지 않고, 아테네사람들이 섬기지 않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비난에 대한 변론에 관한 내용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형벌을 회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많은 지인들의 도피 요청을 받았음에도 그는 강건하게 자신의 변론을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당당하게 표현을 하며 악법도 법 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담담히 죽게 됩니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형벌은 못면할지언정 사형은 구형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양형 판결은 원고측 피고 즉 양쪽 모두 형벌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원고측에서 무거운 형벌을 제시하면 피고 측에서 터무니없는 낮은 형벌로 형벌을 제시한 경우에 배심원들에게 설득력이 없어져 원고 측에서 제시한 그 형벌이 그대로 선택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원고측에서 사형을 제안한 것은 그것의 채택 자체를 목표로 삼은 것이라기보다는, 피고측이 그것과 아주 거리가 있는 형량을 택할 수 없도록 선수 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형량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즉 사형을 구형하였는데 피고 소크라테스가 벌금형 정도를 요구하지 못하고 최소한 추방형쯤을 제안할 수밖에 없게 압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본다고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아쉽게도 억울하지만 추방형을 받았더라면 민주주의 근간을 만들어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그 이후 철학자, 정치가 혹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치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무지(無知)의 지(知)의 경지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뭔가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신적 앎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들 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신적 앎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다른 사람들이 이르지 못한 어떤 앎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음을 저자의 책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차이점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곧 무지의 지의 경지입니다.
그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철저히 검증하며 비판하는 그의 태도가 동료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두렵게 했습니다. 현대의 정치에서도 이러한 비합리적인 여러 가지 행태들이 여전히 보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신들이 확고히 믿어 온 가치와 전통이 일거에 전복되어 버리는 게 아닌지 그들은 두려웠고, 적당히 체면 유지하며 안이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철저함이 그들에겐 불편했던 것이다.
결국에는 그 불편함이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드는 단초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